유다는 예수님이 정죄 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뉘우쳤다고 오늘 본문은 기록합니다.
마 27:3, *뉘우쳐 [메타멜로마이: 메타(with) + 멜로(care) = repent]
행 2:38, *회개하여[메타노에오: 메타(with) + 노에오(understand) = repent]
그래서 영어성경 NIV는 remorse라고 번역하였고 KJV은 repented 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문자상으로는 KJV가 맞고 의미상으로는 NIV가 더 가까운 번역입니다.
J.I. Packer란 분은 그의 책 Concise Theology(162p)에서 말하기를 “참된 뉘우침(회개)은 사람의 마음과 가치와 시각과 목표와 태도와 판단력과 목적에 변화를 갖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회개를 잘 표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된 회개는 하나님을 향하여 삶의 방향을 바꾸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므로 가치와 시각과 목표와 태도와 목적에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바로왕을 보면 이 사실이 분명합니다.
출 9:27절에 보면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This time I have sinned," he said to them. "The LORD is in the right, and I and my people are in the wrong.]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회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과 시각과 태도를 바꾸지 아니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성경에는 유다나 바로와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등장합니다.
발람(Balaam)도 죄를 뉘우쳤습니다 (민 22:34).
아간(Achan)도 죄를 뉘우쳤습니다 (수 7:20).
사울(Saul)도 죄를 뉘우쳤습니다 (삼상 15:24-30).
아합(Ahab)왕도 죄를 뉘우쳤습니다 (왕상 21:27-29).
그러나 그들은 모두 유다와 같이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자신의 잘 못 됨을 깨닫고 후회는 했지만 삶의 방향을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못을 후회하거나, 잘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해서 죄를 용서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에 대한 잘 못 됨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회개란 반드시 죄의 고백과 함께 삶을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가야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향하여”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아니하는 모든 뉘우침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가치와 시각과 목표와 태도와 판단력과 목적에 변화가 생기는 것만이 회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