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갖는 질문이라 생각된다.
선교사 귀츨라프(K.F.A Gutzlaff,1803~1851)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1832년7월23일, 고대도(古代島)섬 앞 바다에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1천t급 군함 로드 암허스트호가 나타났다. 당시 고대도 사람들의 눈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로 보였으리라. 영국과의 통상에 적당한 한구를 조사하고 그 지방 관민(官民)의 통상에 관한 관심을 살필 목적으로 중국 연안을 거처 한국까지 온 이 배에는 독일 출신의 영국선교사 귀츨라프가 통 역 겸 선의(船醫)로 동승하고 있었다.
숭실대 부설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가면 그가 남긴 암허스트호 항해기(영문)을 볼수 있는데, 조선 서해안 기사는 극히 적은 부분이지만 그의 조선에 대한 유별난 관심을 엿볼수 있다. 여기서 그는 조선의 첫 인상을 이렇게 적고 있다.
"이 나라의 토지는 비옥하고 물도 풍부하지만 주민은 얼마없고 개발도 안되었다…그만큼 밉살스런 쇄국제도를 엄격히 지키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는데…이 왕국은 자체적으로 독립하여 통치할 능력이 충분히 있으나 조공을 바치며 중국에 복종하여 왔다. 중국은 이 나라의 여러 파벌싸움을 조장하였고 이로써 이 왕국은 미개 한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조선은 순조(純祖․재위 1800~34) 통치 말년으로 가톨릭 교도들이 수십년간 엄청난 박해를 받고 김조순을 중심으로 안동 김씨가 세도를 부릴 때였다. 정치는 문란해지고 민생 이 도탄에 빠져 각종 참설(讖說)이 유행하는 등 민심이 흉흉했다.
귀츨라프의 한국사역은 1개월만에 암허스트호와 함께 귀국해야 함으로써 가시적 성과는 없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 쇄국정책을 거두어 이 약속한 당에 복음이 들어가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어쨌든 조선방문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 땅에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의 씨가 소멸되리라 고 나는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미칠 날이 오고 야 말 것이다. … 이날을 오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도를 애써 전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믿음은 오늘날 바로 1천만 한국 기독교인의 믿음의 뿌리인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에 최초로 온 선교사는 아무튼 [귀츨라프]로 알려져 있다.